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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숨쉬는 도시, 자금성

서평택 2009. 9. 21. 09:51

 

자금성(표준어:쯔진청, 중국어: 紫禁城, 병음:zǐ jìn chéng)


' ...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 72만 m²의 넓이에 높이 11m, 사방 4km의 담과 800채의 건물과 9999 개의 방이 배치되어 있다.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1987년 "명·청 시대의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곳의 중문인 오문의 가운데 문은 황제만 사용하고 현재도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한다. '


- 출처 위키백과


위에 나온데로 자금성은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며 8백여개의 건물, 9999여개의 방은 보는 이를 압도하며, 같은 베이징에 있는 만리장성마저도 굴복시킵니다.


☞ 들어가면서,,

1987년 상영되었던 영화 "마지막 황제"를 생각하면서 자금성을 찾았다.

영화의 주 배경이 되었던 중국의 자금성(紫禁城)의 이미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영화 속의 내용보다도 촬영장소인 자금성의 엄청난 규모와 그 배경이 훨씬 더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기억을 더듬어 자금성을 찾아 천안문광장에 도착했다.


중국의 주요행사가 개최되고 모택동 기념관과 인민대회당이 있어 늘 중국인과 외국 관광객이 가득한 천안문 광장을 지나 자금성을 들어 섰다.


중국 황실의 장중한 역사를 생각나게 하기도 전에 세계 각국에서 방문한 관광객의 인파에 더 놀랐다.


자금성 안은 외국인과 중국인들로 넘쳐난다. 사방이 바글바글, 또 왁자지껄이다. 여기저기서 뒤섞여 들려오는 중국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등 그야말로 세계 만국의 언어가 오고가는 시장바닥을 연상케 한다.


☞ 생각하면서,,

○ 어렵사리 처음으로 중국에 갈 기회를 얻었을 때, 중국여행을 망설였다. 우리 문화가 중국 문화의 변방일지도 모른다는 감상적 염려도 있었고 중국만은 좀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때 다녀오고 싶었다. 삼국시대 이후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것이 많다. 특히 문자로 기록된 것은 거의가 중국에서 온 것이었다. 나는 내 DNA 속에 있을 수천년에 걸친 답습의 유전인자를 두려워한 것이다. 우리의 원형이 중국에 다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문명의 전이가 시작된 것은 역사시대 이후부터였다. 그래서 나는 문자 이전의 시대인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 속에서 우리 고유의 것을 찾으려 하였다.  끄리띠 섬에 그리스 문명의 원류가 있고 로마 문명의 대부분이 그리스로부터 온 것일지라도 에에게 문명과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은 모두 독자의 세계를 가진 문명인 것이다.

중국에는 좀더 많은 것을 안 후에 가고 싶었으나 길을 나섰다.  뻬이징에 처음 당도했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생각했던 뻬이징이 아니다.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읽은 뻬이징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세계 어디에나 있는 현대건축의 더미가 이미 옛 도성을 대부분 점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안문 광장에서 자금성으로 들어서자 이 거대한 도시는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의 옛 도시와 사람들이 알아야 할 외국의 예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 경복궁의 모델이기도 한 자금성이다. 자금성은 13세기 중엽부터 지금까지 중국의 수도인 성곽도시 뻬이징 한가운데 다시 성벽을 쌓고 만든 도시 속의 도시이다.


☞ 탐방면서,,

 2.5×2.75km인 자금성의 정면에 있던 대명문과 천보랑은 철거되어 천안문 광장이 되었으나 정문인 천안문에서 북문인 건청문(乾淸門) 사이의 부분적 공간은 옛 모습이 모두 남아 있다. 건축적 규모라기보다 도시적 규모의 건축군이다. 수많은 상징이 강조되었는데 개개 건물뿐 아니라 성 전체가 다 그러하다. 성벽과 성문, 문루, 각루 등은 중후하며 높고 큰 형체를 갖추고 있다. 중심축을 기준으로 전체를 하나의 축선상에 집결시키는 공간형식으로 이루어진 자금성의 건축적 특성은 개성이 배제된 집단의 작품이라는 점에 있다.

 

 

▲사진/천안문에서 경산에 이르는 축을 보여주는 자금성의 항공사진.

※ 참고로 이런 사진은 ' 구글 어스 ' 란 프로그램을 이용, 쉽게 찾으실수 있습니다. 역사공부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프로그램입니다.


자금성 주변에 보면 강은 바로 해자입니다.


' ... 해자의 너비는 52m이며 깊이는 6m에 이른다. 해자에는 동서남북으로 해자를 가로지르는 4개의 다리가 있다. 궁궐 주의의 장벽의 길이는 3km에 이르며 높이는 10m나 되며 4개의 큰 출입구가 뚫려져 있다. 자금성의 지붕은 대부분 황색 기와로 쌓여있다. 하지만 황실 서가의 지붕만은 검은 기와로 되어 있는데, 검은색은 물을 상징한다고 하여 검은 기와가 화재로 부터 서가를 지켜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 출처 위키백과



천안문을 지나면 좌우에 사직단(社稷壇)과 태묘(太廟)가 있고 세 외문을 지나 태화문에 들어서면 자금성의 정전(正殿)인 태화전이 나타난다. 하늘 이외에는 자연의 것이 아무것도 없는 완벽한 인공의 세계에 당도하게 된다. 완강한 기하학의 반복인 축상의 공간군이 현란한 황색 기와와 붉은 기둥의 건축군을 형성하고 있다. 황제의 즉위식 등 국가적 행사가 거행되는 태화전 앞의 광장은 조회와 대전을 거행하던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옛 그림에서 그 장엄한 공간의 의식을 본 적이 있다. 권력을 상징하는 공간은 의식의 장치들이 함께 있을 때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광장은 모든 출연자와 장치가 사라진 빈 무대일 뿐이다.

태화전,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의 세 전각은 황제의 낮의 공간이다. 낮의 공간은 모두가 권력의 공간이지만 황제와 황후가 거처하는 건청궁(乾淸宮), 교태전(交泰殿), 곤녕궁(坤寧宮)은 황제의 사적인 삶인 밤의 공간이다. 건청문을 지나면 천안문 이후 처음으로 나무와 꽃과 흙이 나타난다.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천안문에서 오문을 지나 태화문, 건청문에 닿는 완강한 남북의 축은 계속 이어져 북쪽 경산에 와서 완결된다. 자금성은 전체가 하나의 건축군인 집합형식의 건축도시이다. 일련의 중요 건물은 모두 남북을 잇는 축에 배치되어 있고, 남향의 야외공간은 제사의식과 천지에 기원하는 의식의 장으로 신성시되었다. 기본틀은 직사각형의 격자 패턴이며 주동선은 남북방향이고 중요한 문은 성벽의 중앙에 놓여 있다. 『주례』의 「고공기」에 근거한 공간원칙이 방 하나에서부터 성 전체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하고 있다. 되돌아 나오지 않고 북문을 지나 자금성 바깥으로 나왔다. 앞의 세 전각과 뒤의 세 궁을 보는 데만 세 시간이 걸렸다. 모두가 『주례』의 도시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들에게는 개별적 변용이라는 것이 없다.


☞ 둘러보기,,

 

 

 

 

 

 

 

 

 

 

 

 

 

 

 

 

 

 

 

 

 

 

 

 

 

 

 


▲ 위 사진은 중앙 태화전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 참고로 이런 사진은 ' 구글 어스 ' 란 프로그램을 이용, 쉽게 찾으실수 있습니다. 역사공부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프로그램입니다.